테라노스 창립자 엘리자베스 홈스가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하는 터틀넥 셔츠를 입고 2014년 유명 온라인 강좌 TED에서 강연하고 있다. 홈스는 2015년 몰락하기 전 실리콘밸리의 빅스타였다. TED 홈페이지

배드 블러드

존 캐리루 지음ㆍ박아린 옮김

와이즈베리 발행ㆍ468쪽ㆍ1만6,000원

매혹적인 외모에 달변이다.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다. 집안 배경도 좋다. 친가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였다. 큰 부족함 없이 자란 소녀는 승부욕이 강했다. 삶의 목표도 뚜렷했다. 어려서부터 억만장자가 되고 싶었다. 명문대 출신 인재와 화려한 이력을 지닌 전문가가 그와 함께 일했다. 귀가 솔깃해질 사업 아이디어까지 지닌 그녀는 누구나 투자를 고려할 만한 인물이었다.

엘리자베스 홈스는 실리콘밸리에서 한때 유난히 빛나는 별이었다. 출발부터 남달랐다. 2003년 19세 홈스는 방학 내내 준비해 고안한 특허로 창업하기 위해 대학을 과감히 떠났다. 명망 있는 교수와 박사과정 학생이 함께 했다. 홈스의 꿈은 바이오벤처계의 스티브 잡스가 되는 것이었다. 회사명은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을 조합한 ‘테라노스’였다. 실리콘밸리에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유성처럼 사라진 악명 높은 기업의 시작이었다.

홈스의 사업은 “집에서 직접 피 한 방울만 뽑으면 수백 가지 건강 검사를 할 수 있다”는 광고 문구로 요약됐다. 팔에 붙이는 작은 패치를 통해 피 한 방울로도 웬만한 검사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했다. 굵은 손가락만한 주사기에 의한 채혈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경험이니까. 패치로 환자의 약물 부작용을 예측해 약물 투여량을 원격으로 조절한다는 아이디어는 제약업계를 매혹시킬 만했다. 창업 2년도 안 돼 600만달러를 투자 받았다. 회사는 직원 20명가량으로 몸집을 불렸다.

홈스의 아이디어 앞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었다. 현대 과학과 의학으로는 극소량의 피로 의미 있는 검사 결과를 내기 어렵다. 같은 사람의 피로도 다른 검사 결과가 나와서다. 일관성 없는 검사 결과는 의료 분야에선 치명적이다. 홈스의 특허는 사람이 화성에서 거주할 수 있다는 이론과 다르지 않았다. 가능하지만 현실화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홈스는 성과를 내야 했다. 빼어난 인재와 개발비가 필요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검사 결과를 조작했다. 투자자에게 제품을 시연하면서 모니터에 나오는 검사 결과 영상은 이미 만들어 놓은 걸로 대체했다. 거대 다국적제약사 노바티스와 업무 협약을 추진할 때도 속임수 시연을 했다. 홈스의 또 다른 무기는 극도의 보안 유지와 소송이었다. 회사의 비밀을 눈치 챈 사람들은 가차 없이 해고됐고, 기밀유지 협박을 받았다.

모래성 같은 명성은 돈을 불렀다. 월그린과 세이프웨이 같은 대형 회사가 손을 내밀었다. 내부 경고가 있었지만 자칫 경쟁사에 시장을 내줄 수 있다는 조급증이 투자로 이어졌다. 테라노스의 명성이 쌓이고 돈이 몰리니 인재를 끌어오기 수월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모래성은 결국 2015년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로 무너졌다. 10조원에 달했던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순식간에 0원이 됐다.

저자는 테라노스를 무너뜨린 월 스트리트 저널의 기자다. 테라노스 옛 직원 60명을 포함 150명을 인터뷰한 내용 등을 바탕으로 저술했다. 책은 홈스와 주변인들, 테라노스의 사업 방식 등을 통해 좁게는 벤처업계를, 넓게는 미국 사회를, 더 광범위하게는 자본주의 세계의 작동원리를 보여준다. 돈을 둘러싼 음모, 부나비처럼 돈을 좇는 이들의 광기가 페이지마다 배어있다. 홈스가 잡스를 흠모해 애플 출신 직원을 대거 채용했던 일, 잡스처럼 검은 터틀넥 셔츠를 입었던 사연 등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by Raymond Chang 2020. 12. 20. 16:03

기자

이수기 기자

 

‘하루 평균 모바일 방문객 3000만 명 이상’. 

대한민국 IT(정보기술) 기업의 최강자 네이버의 위상이다. 중앙일보는 2일 네이버의 사업보고서를 입수해 네이버를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해 분석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로 본 경영진
2명의 등기임원 한성숙·최인혁
사내독립조직 이끄는 11명 주축
구글·유튜브에 맞서 조직 분화
작년에만 계열사 18개 늘어 116개

네이버호의 선장은 한성숙(52ㆍ여) 대표다. 엠파스 검색사업 본부장, 네이버 서비스 총괄 등을 거쳐 2017년 3월부터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네이버웹툰 자회사인 스튜디오N을 설립하는 등 콘텐트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댓글 조작 사태 등을 무난히 수습한 외유내강형 경영자다. 
 
회사의 넘버2 격인 최인혁(48)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네이버 초창기 멤버다. 삼성SDS 출신으로 2000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해피빈재단 대표 등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이 두 사람이 네이버 이사회에 참여하는 등기임원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 [사진 네이버]

최인혁 네이버 COO. [사진 네이버 다이어리]

네이버 연구개발 조직. 자료:네이버(2018년 말 기준)

 
 

11명의 리더와 CEO의 분점 체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네이버는 등기임원 외에는 공식적으로 ‘임원’이란 직급이 없다. 대신 각 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는 이에게 ‘리더’라는 직위를 부여한다. 네이버 내 독립조직인 7개 CIC(Company in Companyㆍ사내 독립기업)의 각 대표를 비롯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리더는 총 11명이다. 창업자인 이해진(52) 글로벌투자책임자(GIO)도 이들 중 한 사람이다. 한성숙 대표와 최인혁 COO, 그리고 리더 11명 등 13명이 네이버의 갈 길을 정한다. 
 
주요 리더 중 가장 젊은 이는 김승언(40) 아폴로 CIC 대표다. 네이버의 디자인 전략을 총괄한다. ‘밴드’와 ‘카페’ 같은 커뮤니티 서비스는 김주관(47) 그룹& CIC 대표가 맡고 있다. 동영상 서비스인 ‘V라이브’와 ‘네이버TV’ 등을 통합한 V CIC 대표는 박선영(47ㆍ여) 리더와 장준기(48) 리더 두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지고 있다. 장소 기반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글래이스(Glace) CIC의 대표는 이건수(48) 리더. 커머스 서비스를 담당하는 포레스트(Forest) CIC 대표는 이윤숙(44ㆍ여) 리더다.  
 
여기에 네이버페이 CIC는 서울대에서 섬유고분자공학을 전공한 최진우(49) 리더가, 네이버 서비스의 중추격인 검색과 인공지능 검색 분야를 전담하는 서치(Search)& 클로바(Clova) CIC는 신중호(47) 리더가 장을 맡고 있다. 이들 7개의 CIC는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에 박상진(47) 최고재무책임자(CFO), 채선주(48ㆍ여) 최고커뮤니케이션책임자(CCO), 이해진 GIO가 힘을 보태는 구조다. 주요 리더 중 한 사람이었던 송창현(51)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최근 퇴사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지난달 초 네이버 본사와 계열사에 68명의 책임리더를 선임했고, 다른 기업으로 치면 이들은 사실상의 임원"이라며 "책임리더 중에서도 비중이 가장 큰 이들이 CIC의 대표를 맡고 있어 한 번 그 정도 지위에 랭크된 이는 왠만한 계열사 대표 이상의 힘을 갖는다"라고 설명했다.  
  

김승언 아폴로 CIC 대표 [연합뉴스]

박선영 V CIC 대표 [연합뉴스]

 

종속회사 수 116개, 지난해에만 18개 늘어

급변하는 환경과 구글ㆍ유튜브 같은 글로벌 강자와 맞서기 위해 네이버 조직 자체도 빠르게 분화하고 있다. 위기감도 어느 때보다 크다. 급속히 '세포분열'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업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될 성 푸른 사업부는 떼어내 독립 회사로 키우고, 기술력을 갖춘 회사는 꾸준히 사들인다. 라인이나, 네이버웹툰, 라인프렌즈 등이 그런 회사다. 덕분에 지난해 말 현재 네이버의 종속기업(계열사)은 116개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라인 파이낸셜을 비롯해 18개가 늘었다. 34개의 회사를 사들였고, 16개의 회사가 매각·피합병된 결과다. 네이버 측은 4차 산업혁명 시기의 새로운 플랫폼과 시장 획득을 위해, 기술·스타트업·AI 관련 투자와 비즈니스 제휴, 파트너십 확대 등을 활발히 진행한다는 목표다. 

 


네이버 측은 "국내 시장을 주도하는 커머스 분야에 대한 대응은 물론 동영상 콘텐트를 강화하고 글로벌 시장과 신규 사업에도 보다 도전적으로 임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네이버페이 포인트 혜택을 통한 구매자 저변 확대와 AI 상품 추천 기술 등에 주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튜브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인) 동영상 콘텐트 분야에서는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에서 동영상을 쉽게 생산·편집·업로드 할 수 있도록 공동인프라를 제공하고 메인과 검색 등 모든 서비스 접점을 동영상에 최적화된 형태로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수기ㆍ김정민 기자 retalia@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하루 3000만명 방문 네이버, 이들 13인이 이끈다

by Raymond Chang 2020. 12. 20. 15:59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가 당시 접한 이념 서적들은 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 386세대는 제도권 교육에서 배운 것과 정반대의 시각을 접하고 의식의 ‘재탄생’을 경험했다. 이런 책들은 선배들이 대학에 새로 입학한 후배들에게 추천하며 위 학번에서 아래 학번으로 전해져 내려갔다. 386세대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책들을 소개한다.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의 학생운동 세대를 상징하는 책이다. 기자 출신으로 당시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고(故) 리영희 선생이 베트남 전쟁, 중국의 문화대혁명, 일본 경제의 대두 등 당시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사건을 진보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1년 자서전에서 “(리 선생은)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며 “그 예고가 실현된 것을 현실 속에서 확인하면서 (...) 희열을 느꼈다”고 썼다.
 

『자본론』 (카를 마르크스, 김수행 역, 비봉출판사, 1989)

 
마르크스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된 인물이었다. 고(故)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마르크스의 대표작 ‘자본론’을 전문 연구자로선 처음으로 번역 출간해 파문을 일으켰다. 생전에 김 교수는 “당시에도 자본론이 금서 목록에서 해제되지 않았지만, 서울대 교수가 ‘잡아가려면 잡아가라’고 번역 출판해 버리니 경찰과 검찰도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라고 회고했다. 자본론의 번역을 계기로 마르크스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한길사, 1979)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고(故) 송건호 선생이 백기완(통일문제연구소장)·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최장집(고려대 명예교수)·박명림(연세대 교수)·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등과 함께 펴낸 책. 10년 동안 연인원 59명이 참여했고 총 6권이 나왔다. 지배계급에 맞서는 민중, 외세에 맞서는 민족의 관점에서 1945~1953년까지의 국내외 역사를 부문별로 상세히 분석한 연구 모음집이다. 386세대가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는데 교과서 같은 역할을 했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조영래, 돌베개, 1983)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1970년 분신자살한 전태일 열사의 일생을 조명한 책.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전 열사의 어머니로부터 전태일의 수기와 일기 등을 전해 받아 이를 토대로 정리했다.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란 제목으로 처음 나왔을 당시엔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조 변호사의 타계 이후인 1991년 첫 개정판에서야 저자의 이름과 함께 『전태일 평전』이란 지금의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전태일은 반드시 당신에게로 가서 당신의 심장을 두들기며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소리칠 것”이란 서문의 글처럼, 386세대와 넥타이부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태백산맥』(조정래, 한길사, 1983)

1983년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해 1989년 10권으로 완성된 역사 대하소설. 해방 이후와 6·25전쟁 기간에 전남 벌교를 배경으로 전개된 소작농의 봉기와 빨치산 투쟁 등을 묘사해 한국사회의 계급적·민족적 모순을 그려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금기를 깬 이 소설에 당시 대학생들은 열광했다. 문단에서 ‘80년대 최고의 소설’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1997년 국내 다권본 최초로 100쇄 출간 기록을 세웠다.
 

『역사란 무엇인가』(에드워드.H.카, 김승일 역, 범우사, 1977)

영국의 외교관·언론인·역사학자인 에드워드 해럿 카가 공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역사 이론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란 구절이 유명하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생각,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적인 인간에 대한 관념은 386세대에게 큰 울림을 줬다. 김기봉 성균관대 교수는 이 책을 “80년대 변혁 운동에 온몸을 내던졌던 청년학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으로 평가했다. 영화 ‘변호인’에선 이 책을 두고 “불온서적”이란 검사와 “서울대의 필독 권장도서”란 변호사가 공방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철학 에세이』(조성오, 동녘 ,1983)

마르크스 철학의 핵심인 ‘변증법적 유물론’을 생활 속 사례와 일화로 쉽게 풀어쓴 입문서. 야학에서 일하던 서울대 법대 77학번 조성오씨(현 변호사)가 여러 자료를 모아 엮어냈다. 1980년대 캠퍼스에서 운동권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맨 처음 권하는 ‘시각교정용’ 책이자, 노동자들의 ‘의식화 필독서’로 명성을 얻어 인문서 최초로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1990년대에도 연평균 1만부씩 팔렸다.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 역, 일월서각, 1986)

미국의 동아시아 전문가인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1950년 6월 25일 누가 먼저 사격했는가를 찾지 말라”며 6·25 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접근을 주장한 책. 1981년 미국 현지 출간 때부터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커밍스는 1945년 해방 때부터 한반도는 이미 사실상의 냉전 상태였기 때문에 6·25 당일 누가 먼저 침공했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 같은 관점은 김일성의 남침에 대한 책임을 면제해주는 의미가 있어 386세대가 군사정권의 반북 이데올로기를 공격하는 이론적 토대가 됐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각종 사료가 추가 공개되면서 6·25는 사전에 면밀히 계획된 침공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수정주의적 접근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탐사보도팀=김태윤·최현주·현일훈·손국희·정진우·문현경 기자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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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ymond Chang 2020. 12. 2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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